오늘의 좋은생각 카테고리

정용철의 사랑의 인사
아름다움new
2017.05.25   조회수 : 926    댓글 : 0개
아름다움은 우리 영혼에 직접 찾아와 가장 선한, 가장 고귀한, 가장 즐거운 감정을 촉발한다. _ 존 F. 케네디'아름다움'이란 어떤 상태를 말할까요?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모습을 말할까요?'아름다움'이란 단어를 쓸 때마다가장 선한, 가장 고귀한, 가장 즐거운 감정이 떠오릅니다.그것은 나에게 직접 찾아옵니다.다른 사람이 아무리 전해 줘도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이 아니면 아름답지 않습니다.단순과 복잡, 소박함과 화려함을 떠나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최선의 상태입니다.여기에는 순수한 권위와 품위가 있습니다.그리고 그것은 즐거움을 줍니다.기쁨과 행복을 줍니다.그래서 아름다움을 떠올리면바로 마음이 밝아지고 생각이 맑아집니다.
동행의 기쁨
"당신은 어떻게 일하고 있나요?" <택시 기사 정태성 님>
2017.05.11   조회수 : 4,409    댓글 : 6개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택시 기사 정태성 님(52세)은 이 말처럼 사명감을 갖고 일해 왔다. 그는 우동 한 그릇을 만들어도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끓여야 한다고 믿는다. 1997년 1월 23일, 그는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제 인생이 뒤바뀐 날이라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합니다. 당시 신용 불량자에 빚쟁이 신세였죠. 게다가 두 돌 된 딸까지 잃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아이였어요. 수술을 마치고 나오니 그 여린 몸이 퉁퉁 부었죠. 의사가 말하길 오래 살기 어려울 거 같대요.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냈어요. 만약 아내가 임신했을 때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줬다면 건강하게 태어났을 텐데……. 제 탓이죠. 사업이 망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늘 불안한 상태였으니까요.화장터에서 딸을 보낸 그는 실성해 며칠을 방황했다. 정신 차렸을 땐 잠실 대교였다. 도무지 살고 싶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어떤 건물에서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택시 기사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이들이었다. 순간 그에게 희망이 생겼다. ‘내겐 마지막 기회다. 택시 운전을 해 보자!’운전을 잘하기는커녕 지리도 몰랐지만 우선 차에 올랐어요. 끼니를 거르고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하루 열네 시간 운전했죠. 회사에 돌아와 차에서 내릴 때면 다리가 안 움직일 정도였어요. 그 고생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4개월마다 치아가 하나씩 빠지더라고요. 한 달 용돈 2만 원으로 이발 한 번 하고 목욕탕에 갔어요.그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고된 노동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술 취한 승객이 타자마자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꾹꾹 참고 목적지에 다다라 말했다. “손님, 요금 4,500원입니다.” 한데 그가 만 원짜리 다섯 장을 쥐고 한 장씩 뿌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잘 봐. 네가 욕먹은 대가다.” 그는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이 돈 당장 가져가요. 요금만 받겠습니다.’ 하고 소리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돈을 줍고 있더란다. 동전 하나가 아쉬운 시절이었다.그만둬야겠다 결심한 지 며칠 뒤였어요. 새벽부터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탔죠. 일하러 간다 하더라고요. 짠한 마음에 요금을 적게 받았더니 대뜸 화를 내며 젊은이한테 그래서야 되겠느냐며 막무가내로 5천 원을 주머니에 넣어 주는 거예요. ‘오늘 돈 많이 벌게. 어여 가.’ 하면서요. 친할머니도 생전에 몸이 불편했는데 살아 계셨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여태껏 제게 잘해 준 사람들이 떠올랐죠.그러고 보니 상처받은 경우보다 행복을 느낀 적이 훨씬 많았다. 고마운 사람들을 한동안 잊었을 뿐이었다. 운전 첫날이라고 하자 한 학생은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주며 “기사님, 파이팅!” 하며 용기를 북돋웠다. 승객이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로등 없는 어두운 골목을 비춰 주자 냉장고 안 음식을 죄다 꺼내 와 품에 안겨 준 일도 있었다.제게 욕한 사람을 다시 만나면 절이라도 하고 싶어요. 인생 스승이니까요.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죠. 명품이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택시 기사로서 당당함을 지키며 일했어요. 13년 차가 되자 일에 애정이 커져 해외의 선진화된 택시 문화를 배우고 싶었죠.그는 친절한 서비스로 유명한 일본 엠케이(MK) 택시의 신입 사원 연수를 받고자 무려 백 장 넘는 편지를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대사관, 대기업, 서울시에서 받은 추천서를 보내도 마찬가지였다. 정식 직원만 연수받을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서서히 지칠 즈음 회사 부회장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가 사정했다. 그열정이 통한 걸까. 며칠 후 연수에 참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교육받고 한국에 온 뒤 복장과 서비스를 달리했어요. 차에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고 사고에 대비해 비상약과 심장 제세동기를 갖췄죠. 손님이 탈 땐 문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게 팔로 문틀을 받쳤고요. 33개의 친절 안내서도 만들었어요. 상황에 따른 승객 응대법을 정리해 둔 거죠. 처음엔 정말 어색했어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움츠러들 적마다 부회장의 조언을 되새겼죠. ‘처음엔 가까운 동료들부터 자네를 비난할 걸세. 하지만 자부심을 갖고 10년간 하다 보면 택시 기사에 대한 인식이 천천히 바뀔 거야.’손님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공부해 자격증을 60여 개 땄다. 외국어, 레크리에이션, 응급 처치, 서비스 전문가 등 종류도 다양했다.저는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을 업으로 삼았어요. 살다 보니 주위에 이런 경우가 참 많더라고요. 그런데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일이라도 애정을 갖고,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노력하면 그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와요.*인터뷰 전문은「좋은생각」6월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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